에이전시 대표가 3년째 같은 단가를 쓰는 이유
"단가를 올려야 하는 건 알아요. 근데 지금은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에이전시 대표들한테 단가 얘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말이 거의 이거예요. 그 '지금'이 1년째 이어지고 있는데도요.
근데 이상하게도, 어떤 팀은 단가를 올려요. 배짱이 세거나 영업을 잘 해서가 아니라 올릴 수밖에 없는 타이밍을 알고 있어서예요. 단가 인상은 결심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말을 꺼내느냐의 문제예요.
에이전시 단가 올리기, 타이밍이 전부예요
같은 말도 언제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온도가 달라요. 단가 인상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명확한 타이밍은 계약 갱신 직전이에요.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음 일을 논의하는 시점은, 단가를 재설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식 창구예요. 많은 팀이 이 순간을 "계속 일하게 됐으니 다행이다"로 그냥 흘려보내요. 그런데 이 타이밍을 그냥 넘기면, 다음 기회는 또 계약이 끝날 때까지 없어요.
갱신 협상에서 단가를 올리려면, 이전 계약 기간에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먼저 정리해둬야 해요. 납기 준수율, 수정 요청 횟수, 추가 의뢰 비율 — 이 중 하나라도 숫자로 말할 수 있으면 협상의 결이 달라져요. "잘 해드렸잖아요"와 "납기 100% 지켰고, 재계약률이 90%예요"는 완전히 다른 대화예요.
두 번째 타이밍은 클라이언트가 추가 요청을 할 때예요.
"이거 하나만 더 추가해줄 수 있어요?"가 들어오는 그 순간이요. 이때 그냥 해주는 팀이 있고, 이걸 계기로 단가를 조정하는 팀이 있어요.
"이번엔 빠르게 도와드릴게요. 다만 다음 계약부터는 이 부분을 기본 범위에 포함해서 단가를 재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갑작스럽지 않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방식이에요. 추가 요청은 단가 재논의의 자연스러운 명분이에요.
세 번째는 의외로 가장 쉬운 타이밍인데, 신규 클라이언트를 처음 받을 때예요.
기존 거래처 단가를 올리는 건 어렵지만, 신규 거래처에 처음 제시하는 단가는 처음부터 높게 설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많은 팀이 "일단 먼저 받아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신규 거래처에도 기존 단가를 그대로 써요.
신규 거래처에서 조금씩 높게 받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클라이언트 포트폴리오가 자연스럽게 바뀌어요. 낮은 단가 거래처는 줄고, 높은 단가 거래처가 늘어나는 구조로요.
에이전시 단가 인상 전에 스스로 확인해야 할 것들
타이밍을 알아도, 협상 테이블에서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있어요. "왜 이 가격이 맞는가"를 설명할 근거가 없으면, 클라이언트가 "왜요?"라고 물어보는 순간 무너지거든요.
근거는 두 가지예요. 비용 구조와 성과 데이터.
비용 구조는 생각보다 많은 팀이 정확하게 모르고 있어요. 프로젝트 하나에 인건비, 외주비, 툴 비용, 대표 시간 중 얼마가 들어갔는지 숫자로 말할 수 있는 팀이 많지 않아요. "대략 이 정도 남겠지"로 운영하다가, 나중에 보면 생각보다 훨씬 덜 남는 구조인 경우가 많아요. 프로젝트당 마진이 10% 이하라면, 단가 인상은 더 이상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예요.
성과 데이터는 더 단순해요. 클라이언트한테 우리가 얼마나 잘 해줬는지를 수치로 꺼낼 수 있냐 없냐예요. 최근 6개월간 납기 준수율이 어떻게 됐는지, 재계약률이 몇 퍼센트인지, 추가 의뢰가 몇 건이었는지 — 이게 한눈에 정리돼 있는 팀이 협상에서 먼저 말을 꺼낼 수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 쓰는 단가가 언제 정해진 건지 기억하세요? 3년 전에 정한 단가를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면, 사실 물가 인상만으로도 단가를 올릴 명분은 충분히 있어요.
단가를 올리면 클라이언트가 나가지 않을까요?
나갈 수도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요.
그런데 그게 나쁜 일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단가 인상에 이탈하는 클라이언트는, 거꾸로 말하면 우리 팀의 가치를 그 가격으로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 클라이언트를 잡기 위해 계속 낮은 단가를 유지하면, 팀 전체의 에너지와 시간이 거기에 묶여요.
오히려 단가를 올렸을 때 "그렇군요, 알겠어요"라고 반응하는 클라이언트가 어디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게 더 중요해요. 그 클라이언트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거래처예요.
단가를 올리는 게 두렵다면, 지금 어떤 클라이언트를 잡아둬야 하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는 거일 수 있어요.
단가 인상을 결심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어떤 프로젝트에서 얼마가 남고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거예요.
단, 문제는 그 숫자가 한곳에 없다는 건데요.
견적서는 이메일 속에 있고, 인건비는 엑셀에 있고, 세금계산서는 홈택스에 있어요. 프로젝트 하나의 실마진을 꺼내려면 파일 세 개를 열고 30분을 써야 해요. 그 상태에서는 단가를 올려야 한다는 감도, 올렸을 때 결과도 감으로만 예측할 수밖에 없어요.
프로젝트별 마진, 거래처 이력, 계약 조건이 한곳에 보이는 팀이 협상 테이블에서도 먼저 말을 꺼낼 수 있어요.
